[전병일 백전면 출신 남양주신문사 회장] 나라가 대통령 복이 없나? 대통령들이 복이 없었나? (1부)인간으로부터 나오는 정치와 권력의 주인공들인 역대 대통령들의 기구한 운명들
대통령이 꿈이라는 자식은 낳지도 말고, 키우지도 말라는 말이 있었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 박근혜, 이명박 구속 때부터 나돌던 말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어디에다 무엇이라 해야 할까?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로 인하여 현직 대통령이 헌정사상 초유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되어 나라의 품격이 바닥을 치고 헌정질서와 법치가 무너져 정치권은 서로 상대 탓의 공세에 열을 올리고, 국정은 뒤로하여 상호 간에 트집과 생떼로 허송세월을 보내면서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야당이 아닌 여당에서 헌재와 법원, 선관위, 검찰, 공수처를 부정한다는 것이 자기부정인 것 같아 안타깝다.
대통령은 나라의 구심점이며, 최고의 지도자이자 국부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국민의 선택에 따라 국가 운명이 결정되고, 국민의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세계대전에 의해서 일제로부터 해방된 민족이다. 광복의 기쁨도 삼일천하였다. 북의 평양에는 소련군이, 남쪽의 서울에는 미군이 상륙·점령하여 미소공동위원회가 설치되면서 분단이 예고되었고, 분단이 되었다.
1948년 남한 단독 정부수립과 1950년 북한 김일성이 남침 야욕에 의한 남북전쟁으로 동족 간에 피를 흘린 젊은 희생자가 수십만에 달한다는 통계였다. 20만의 미망인과 10만의 고아와 1,000만의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제1공화국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서 제6공화국의 8번째 윤석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20대 대통령에서 사람으로서는 13번째의 대통령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어떠했을까?
국부와 부정의 원흉으로 논란을 일으킨 이승만의 제1공화국 대한민국 건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미국에 체류 중 독립운동을 하면서 미국의 민주제도를 직접 답습을 한 정치의 노신사요, 기독교 신자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면서 노신사의 체면도 민주제도와 예수의 가르침을 멀리하고 다른 국정을 경영하면서 4.19혁명을 불러오게 하는 가장 저열하고 대담한 부정부패와 선거 부정으로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1948년 대한민국 국부로 불리면서 국민의 존경을 통째로 받은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부터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율법이나 전통보다도 우선시한다는 국민공동체의 생존보다 권력 연장에 뜻을 품은 노욕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백성들을 괴롭혔던 친일세력이 세탁을 하여 친미로 변장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공산군 삼일천하 당시 붉은 완장을 차고 공산당에 협력하여 토지개혁을 서두르다가 공산군이 후퇴하자. 국가 권력세력에 끼어들어 부패와 부정선거 원흉의 주체로 권력의 세도를 부리면서 나라의 기강이 문란해지기 시작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세력을 단호히 척결하지 못한 것이 권력 누수로 시작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무소속 후보가 60%에 해당하는 126석을 차지하자 국회의 간선에 의한 재집권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 후 1952년 7월 24일 발췌개헌을 통하여 국민직접선거로 개헌을 하여 제2대 대통령이 되자 8년의 임기로는 노욕에 매우 부족하여 1954년 사사오입이란 불법으로 3선 제한 철폐를 핵심으로 개헌했다.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못 살겠다 갈아 보자는 구호를 앞세운 민주당의 신익희 대통령 후보의 급작스러운 서거로 이승만은 3선에 당선이 되었지만, 부통령은 민주당의 장면 후보가 당선되었다는 것이 당시의 민심을 알 수 있다.
(다음호에 계속)
<저작권자 ⓒ 함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