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인식개선 캠페인 중이라는 서명지를 깔아놓고 손짓을 했다. 민생고를 해결하고자 식당 간판만 보고 서둘러 가는 길이었지만 평등사회, 포괄적 차별 금지법 발의에 참여했던 나로서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일필휘지로 서명을 했다. 퀴즈를 맞히면 선물을 준단다.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를 외면하고 퀴즈를 맞히고 상품도 받았다.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다. “나도 퀴즈 하나 낼게요. 맞히면 이 상품 도로 줄게요”. 서명을 받던 젊은이들이 동시에 “네!”했다. “장애인을 장애우라고 부르면 그건 차별적 용어일까요. 아닐까요?” 쉽지 않은 이 퀴즈를 그들은 정답을 맞혔다.
밥을 허겁지겁 먹는데 앞에 앉은 동행 선배가 “경상도 밥은 우리 전라도보다 맛이 없다던데 이 집 밥은 꿀맛이네?” 우쭐해진 나는 우리 고향 함양 자랑을 떠벌렸다. 눈치 없는 식당 주인이 “우리는 남원에서 왔는데요.”라고 했다. 진짜 눈치 없이.
후식으로 사과를 가져왔다. “괜찮습니다. 그 말씀 하셨다고 사과할 일은 아닙니다.”라고 했더니 모두 와르르 웃었다.
이번에는 게임이었다. 게임에서 이기면 산삼! 산삼 한 뿌리를 준다고 해서 우리 셋은 차례차례 응모했다. 노란 모형 손바닥을 보고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게임을 모두 다 이겼다. 산삼 교환권을 받아 든 나는 걷잡을 수 없는 유혹에 또 게임을 하게 해 달라고 졸랐다. 선배 형수가 “아유. 목암 선생. 체통 좀 지키세요.”라며 내 옆구리를 찔렀다. 선배는 아내의 소매 끝을 당기며 “나 둬. 공짜라면 양잿물도 큰 거 먹는 법이여”.
상림 숲길을 최치원 숲길로 적어 놨던데 다른 곳의 돌 비석은 ‘고운공원’이라고 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역사 선생을 하다 정년 퇴임한 선배는 누가 선생 아니랄까 봐 지적질을 했다. “공원을 곱게 만들어 놓았다는 말인가? ‘고운 최치원 공원’이라고 해야 알아먹지 원.” 나는 함양을 위한 무료변론에 나섰다. “고운이 뭐지? 무슨 말이지? 하면서 사람들이 최치원의 자를 분명하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겠지요.” 선배는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했고 형수는 내 편을 들어 해몽이 좋아야지 꿈보다 못한 해몽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솟대 만드는 체험장에 들어섰다. 솟대 하나를 만들어보는데 주인이 물었다. 어디서 왔냐고. “함양하고 딱 닮은 전라도 **군에서 왔습니다.”라고 하니 주인은 함양하고 딱 닮은 게 뭐냐고 물었다. 선배는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군수 놈이 워낙 해 처먹고는 감방 간 게 똑 닮았지라.” 나는 얼른 선배 부부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힐링체험관에서 뇌파측정을 했다. 두뇌 스트레스가 ‘높음’으로 나왔다. 국선도와 각종 선 수련을 해 온 나는 곁에 있는 음파 운동기에서 세팅되어 있는 8분 동안 온전히 호흡을 고른 다음에 뇌파측정기 정밀도를 탓하며 재도전했다. 아뿔싸. 그 사이에 뇌파 측정기가 고장이 났단다. 재도전을 못했다. 다행일 수도 있겠다.
가는 길도 묻고, 산양삼의 효능도 묻고, 사상체질 진단에서 소/태와 음/양을 묻고, 상품값도 물었다. 안내원이 답을 모를 때 하는 대답은 두 종류였다. “나는 담당자가 아니라서 잘 몰라요”가 첫째요 “잠깐만요. 알아봐 드릴게요.”라며 답을 찾아 알려 주는 게 둘째였다. 색채성향 진단이 너무도 정확한 진행 여성에게 “함양 장터 가서 돗자리 까셔도 되겠어요.”했더니 씩 웃었다.
셔틀버스 정류장이었다. 너 댓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셔틀버스 끊겼나?”. “기다리면 오나?”. 시계를 보니 오후 6시 5분이었다. 6시가 행사 마감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의 정당한 불안이었다. 종일 걸어 다니느라 지칠 대로 지친 우리 노인네들이 주차장으로 걸어가려고 몇 걸음 옮겼을 때 구세주처럼 셔틀버스가 왔다. 기사님이 막차가 6시 반이라고 하셨다. “막차 시간을 이곳 정류장에 써 붙이면 좋겠습니다”했더니 기사님이 반색을 하며 꼭 건의하겠다고 했다.
2021 함양산삼 항노화 엑스포 갔던 하루 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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