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코로나로 돈벌이 활동이 여의치 않은 상태라 밥 벌이를 못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젊은이들이 그렇다. 그래서 밥을 먹기는 하는데 밥값을 못하는 게 서글프다고 한다. 벌이가 없고 나이든 나는 어떤가를 생각해 본다.
나는 매일 궁도장(활터)에 가서 국궁 활을 연마하는데 한순 5발을 쏘아 3개 이상 맞으면 오늘 ‘밥값 했다’고 좋아 하였다. 그만큼 건강해졌다는 것이다. 노인은 건강이 제일이니까. 그러던 어느 날 진주에 일보러 가는데 00절을 지나는데 절 옆의 현수막에 이상한 문구가 있어 멈추고 유심히 보니 ‘오늘 밥값 했는가?’ 라는 글귀가 씌어 있었다. 그 후 다닐 때마다 바라보며 밥값을 생각하게 되었다.
궁도장에서 계속 활을 쏘면서 ‘오늘은 밥값을 해야지’하고 다짐하면서 활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매사의 일을 하면서 오늘은 밥값을 해야지 하면서 마음으로 다짐하기도 하였다. 오늘의 중요한 일은 무엇이드라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하루에 해야 할 일을 일목요연하게 계획하게 되었다.
해질 녁이면 집에 오면서 ‘나는 오늘 밥값을 했는가?’ 생각해 본다. 직장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는 보통 하루에 10~13시간 일을 한다. 그 시간 중 나는 직장을 위해 얼마의 시간을 투자 했는지 자문해 본다.
학교 다닐 때 일요일만 되면 아버지가 농사일을 꼭 시켰다. “사내는 모든 일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평소 소신이었다. 밭매고 꼴베기는 기본이고 지게질 벼, 보리 베기 등 농사일은 끝이 없다. 방학 때면 일하기 싫어 차라리 학교에 가는 게 더 좋았다. 가장 힘든 일은 8월 땡볕에 벌판의 논에 들어가 어른과 같이 망에든 가루약(도열병)을 몽둥이로 쳐서 뿌리는 것이다. 약칠 때 얼굴이 빨갛게 익어 따가울 때가 많다. 그럴 때 “너 오늘 밥값 했다”고 칭찬 하신다.
이 핑계 저 핑계로 꾀부리며 일을 적게 하면 밥상머리에서 딱 한 마디 하셨다. “밥값도 못하는 밥 포수야”하고 밥만 축내는 사람이라 하였다.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목민관의 바른 몸가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옷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묵묵히 바르게 앉아 정신을 맑게 한다. 생각을 정리해서 오늘 해야 할 일을 놓고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의 차례를 결정한다. 그리고 모든 일에 사욕(私慾)을 끊고 한결같이 천리(天理)를 따르도록 한다.”라고 했다. 밥값 하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밥값’이란 인연에 의해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책임과 역할을 완수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부처님은 여름철 3개월 우기에는 제자들과 하안거를 하면서 한 끼 밥을 먹으면서 참선 수행으로 밥값을 대신하셨다. 삶에 대한 책임을 다하라는 뜻이다. 책임과 역할을 다한다는 것은 논어에서 말하는 군군신신(君君臣臣) 부부자자(父父子子)하는 것이다. 즉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아들은 아들답게 행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해질 때가 되면 그 현수막을 생각나며 그 옆의 절에 있는 부처가 준엄한 목소리로 묻는 것 같다. “자네, 오늘 밥값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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