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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소재우] 사라져 가는 무궁화와 광복절

함양신문 | 기사입력 2025/09/01 [10:26]

[송암 소재우] 사라져 가는 무궁화와 광복절

함양신문 | 입력 : 2025/09/01 [10:26]

 

  © 함양신문

요즈음 무궁화가 내 주변의 여러 곳에 보인다. 밭두렁에 집 뜰에 심었고 운동장 주변에는 십여 년 전에 나와 궁도인이 심은것이다 . 그 외의 지역에는 도로변에 사회단체에서 심었다. 그러나 광복절날 태극기 계양 하는 집이 별로다.

 

국민들이 국가명절 광복절과 국화인 무궁화를 잊었나 보다. 길가의 무궁화는 잡초에 쌓여있다. 애국심이 사라져 가고 있다.

 

1950녀대는 광복절이 되면 각 가정에 태극기 달고 함양학교에 학생과 사회단체 인사가 모여서 축하 기념식을 하고 시가행진을 하였다. 60년대는 무궁화심기를 장려해 가정 학교 도로변에 많이 심고 보기 좋게 가꾸었다, 80년대 들어서는 난데없이 벚꽃을 관광 목적으로 도로변에 심기 시작해 무궁화가 도태되고 있다. 정권이 바뀌니 모든 게 바뀌는 무상의 세월이 오는가 본다.

 

무궁화(無窮花)는 나라를 상징하는 꽃이다. 나라여 영원 하라는 의미다. 색이 은은하고 꽃이 오래 까지 계속 피어 우리 민족의 기상을 닮았다 한다. 선조들의 삶과 밀접하다. 제80주년 광복절을 즈음해 우리 민족과 함께 강인하고도 끈질기게 꽃을 피우고 순국선열과 함께해온 무궁화의 내력을 살펴보았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독립은 수많은 순국열사의 염원이었다. 무궁화는 독립을 향한 우리나라 역사 곳곳에서 발견된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대중 앞에서 민족주의를 강론 할 때나 감옥에 갇혀서도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의 애국가를 부르며 우리 민족의 애국 애족 정신을 일깨웠다.

 

윤봉길 의사도 중국 상하이 홍구공원 의거 이틀 전에 작성한 시(詩) ‘광복가’ 가운데 무궁화를 거론했다. ‘피 끓는 청년 제군은 아는가, 무궁화 삼천리 우리 강산에 왜놈이 와서 왜걸대는 것을...윤의사는 자신의 희생이 조국 독립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며 이 땅에 무궁화가 계속 피기를 바랐다. 마음속에 태극기와 무궁화를 품은 윤 의사는 민족의 안녕을 기원하며 폭탄을 던졌다.

 

또 남궁억 선생의 무궁화 사랑이 있다. 그는 한서 교회당에서 비밀리에 한글 교육을 하고 무궁화 묘목을 전국에 보급하던 중 밀고를 당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 되어 온갖 고문과 고초를 당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무궁화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남선생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무궁화 관련 놀이와 노래를 100 가까이 만들어 대중에게 전파했다. 전 국민에 보급한 무궁화 묘목 수도 30만 주가 넘는다.

 

절망의 시대에 좌절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어떠한 가혹한 환경에도 꽃을 피우는 무궁화 같은 강인함 기개. 끈기의 민족정신을 심었다. 이외에도 임시정부와 해외 독립운동 단체들은 기념식이나 회의에서 순국선열을 추도할 때 무궁화 노래를 불렀다. 독립군이 전장(戰場)에서 불렀던 군가 ‘독립군의 분투’에도 ‘무궁화 봄을 만나 다시 필 때에 우리 즐거움 따라서 무궁하리라’라는 구절이 있다.

 

이처럼 무궁화는 왜정 때 우리 민족에게 독립정신의 표상으로 여겼다. 해방 후 현재까지도 무궁화는 국가의 상징으로 애국가 후렴구나 국기 깃봉 각종 상장과 훈장, 군인 경찰의 계급장 모표 등에 사용하는 등 우리 일상에 자리 잡고 있다.

 

며칠 전 광복절을 맞아 무궁화를 다시 떠 올렸다. 매일 아침 피었다가 저녁에 져도 다음날 새로운 꽃을 다시 피우는 무궁화, ‘은근과 끈기’ ‘일편단심’이라는 꽃말처럼 무궁화는 좌절의 시기였던 일제부터 지금까지 묵묵히 꽃을 피우며 민족의 앞날을 응원하고 있다. 순국선열들이 자신의 목숨을 희생시키면서 일궈 낸 광복절을 기억하며, 우리 마음속에 작은 무궁화 씨앗을 심어 애국심을 키워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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