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목일의 유래
봄이되니 시장에 수목의 장이 선다. 수년 전 함양에 큰 산불로 백암산과 대봉산의 나무가 탔는데 헬기가 간신이 불을 진화한 것이 생각난다. 그러자 닥아올 식목일이 떠오르면서 식목일은 언제 어떻게 정했을까 알고 싶었다. 요즈음은 나무가 무성하니 식목일에 대한 관심이 적다. 그만큼 나무사랑의 사상이 줄어들었다. 심는 것 못지않게 가꾸고 보존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유래를 살펴본다.
1975년 산림청은 제30회 4월 5일 식목일 식을 시행하면서 3월 21일부터 4월 20일까지 한 달 동안의 국민 나무심기 기간을 올해부터 3월 1일부터 4월 말일까지 두 달 동안으로 늘리고 전국 각 지역 별로 행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식목일은 상징성과 역사성을 고려해 종전대로 4월 5일로 한다고 했다.
이 식목일은 해방후 1946년에 미 군정청에서 산의 황폐화가 심해 산지녹화를 위해 4월 5일을 식목 일로 정했다. 왜 이날로 했느냐 하면 신라가 당나라까지 몰아내고 삼국 통일을 한날이 문무왕 17년 양력 4월 5일이며. 조선의 태조 때부터 풍년제를 지내던 선농단에서 성종이 직접 풍년 기원 제를 지내고 뽕밭을 가꾼 날이 경칩 뒤 첫 해일(亥日)인 3월 10일이 양력으로 하면 4월 5일이라 이날을 식목일로 정했다. 그래서 식목일은 우리 역사와 농림사상이 깃든 날이다.
역사적으로는 1910년 순종 때 친히 경제정책을 하면서 봄에 손수 산에 나무를 심은 것이 첫 유래이다. 한국의 제1회 식목일 행사는 1946년 4월 5일에 사직공원에서 있었다. 이후 전국적으로 관공서 각 학교에서 앞장서서 식목행사를 하였다.
지구온난화로 식목 날짜를 앞당겨 3월 1일부터 심을 수 있게 되었다. 1949년부터 공휴일로 해 전국민이 식목에 동참케 했다. 그러다 1960년 공휴일을 폐지했다가 1982년 심은 나무 잘 가꾸기를 위해 다시 공휴일로 정했다. 1990년 산업노동 우선정책에 밀려 다시 폐지 되어오다 몇 년 뒤 또 복원, 그러다 2006년 토요휴무로 노는 날이 많다 하여 다시 폐지돼 오늘에 이르렀다. 식목 기간이 2달로 늘고 공휴일이 아니니 식목일은 있으나 추억 속의 한 기념일로 남았을 뿐 이제 나무 가꾸기에는 관심이 없어져 아쉬울 뿐이다.
* 산림녹화와 나무사랑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산에 대한 관념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이라 하여 누구나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었다. 그러다 조선 말기 인구가 2천만이 되니 연료난이 심각해 그나마 남았던 나무들마저 사라 져 갔다. 더욱이 큰 산은 해마다 화전(火田)을 하다 일어나는 산불로 비가오지 않는 한 껄 수가 없어 피해가 컸다. 그러다 순종황제가 산림에 관심을 가졌고 일제 치하에서 총독부도 산림경찰을 큰 산이나 사찰림(寺刹林)까지 파견해 단속 하였고 관청에 불법 나무 채취를 단속시켜 가까운 산은 다소 녹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해방이 되자 단속이 뜸한 사이 남벌로 인해 산지가 황폐화 되어갔다. 그러자 미 군정청에서 식목일을 정하고 황폐한 산의 사방(砂防)을 위해 빨리 자라는 수종으로 아카시아 나무, 오리목, 리기다소나무, 등을 주로 심게 하였다. 그러다 6.25 전쟁 중 부산 피난민 판자촌 나무를 판자를 보충하기 위해 지리산 등에서 불법 벌목이 난무 해 산이 망가졌고 휴전 뒤는 인구 증가로 연료난이 심각해지니 녹화가 쉽지 않게 되자 박대통령이 연탄 보급에 힘써 녹화의 기틀을 잡았다. 더욱이 우리나라 재래종 버드나무와 은사시의 교잡 육종인 현사시 나무 개발로 속성수 녹화가 시작 되었다.
특히 국유림은 외국이 산지의 70% 이상인데 비해 사유림이 70%이상 많아 산지 관리가 잘 안되자 사유림을 많이 사들이고 있다. 산불 방지를 위해 산림항공대가 창설되어 헬리콥터로 큰불을 끄고 함양에도 산림항공 관리소가 있다.
노력의 결과로 세계에서 놀라고 있다. 이제는 경제림 녹화에 힘쓸 때다. 그러자면 모든 국민이 식목일을 잊지 말고 경제성 나무를 심는데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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