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며느리 김복순
고령의 연세에 당신의 육신은 녹슬어 삐거덕거리면서도 삶의 열정 놓지 않으시고
하루의 일상을 엎드려 일기로, 때론 시로 쓰시며 삶을 즐기시는 저의 시어머님을 소개합니다.
동물과 풀 한포기의 생명도 소중히 여기시며 검푸른 바다 속 깊은 사랑을 오로지 자식에게 쏟으며 일평생 자식바라기로 살아오신 시어머님은 들꽃처럼 고우십니다.
흔들림은 있어도 결코 부러지지 않는 억새 같은 삶을 사셨지만 영혼은 맑고 순수하신 분입니다.
유년시절 꽃신신고 자란 호강은 잠시 가난한 농부와 결혼 후 갖은 고생과 보릿고개를 견디시며 평생을 새벽달 보며 들에 나가시고 달이 떠야 호미손을 내려놓으신 시어머님은 무한 긍정의 사고로 어떤 힘겨움도 체에 모래 빠지듯 철철 걸러내시며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오시다가 3년 전 육십 년을 넘게 살아오신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뒤 온갖 열정과 의욕을 내려놓고 1년 가까이 우울해 하셨습니다.
그래서 90세가 넘어도 100세가 되어도 예쁜 시를 쓰시며 사셨던 시인 시바타도요 할머니를 소개하며 어머님 살아오신 날들을 일기로 적어보라고 권유하였더니
처음 반응은 “내가 글은 무신 글을 쓰노?” 하시더니 보름도 안 되어 꼬불꼬불한 글씨를 스케치북 가득 채우셨습니다.
그 후 잦은 통화로 꾸준히 시와 일기를 쓰게 하여 2년 남짓 150여 편의 시와 회고록을 쓰셨습니다.
일제강점기와 6.25를 겪으며 초등학교 1년의 학력이지만 구김살 없는 소녀의 감성으로 보릿고개 시절을 진솔하게, 때로는 가슴 뭉클하게 적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2019년 KBS ‘노래가 좋아’라는 프로그램에 어머님의 시도 자랑할 겸 함께 출연하여 노래도 부르면서 그때 70여 편 모아지면 시집도 꼭 내어 드린다는 약속을 하였기에 2년 넘게 긁적이며 써 오신 글을 모아 5월 어버이날을 기념하여 출판을 하였습니다.
전문가의 눈에는 시답지 않겠지만 저는 어머님의 글을 읽으면 소소한 감동에 콧등이 찡하기도 하고 참 재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작가님이라고 부르면 어머님은 너무 해맑게 웃으십니다.
농사꾼을 천직으로 여기시며 아직도 상추 배추 한 포기 더 심어서 자식에게 먹이려고 애쓰시며 노년의 일상과 외로움을 글로 달래시는 저의 시어머님은 자식에 대한 사랑의 온도는 그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이 높으신 분이십니다.
시어머니께서는 옛날 사람들은 누구나 힘들게 살았다고 하시지만 가난과 싸우면서 평생 불을 네 번이나 내고도 넘어지지 않고 이겨내시고 억척같이 사신 세월을 시로, 때론 곱게 묻어둔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시로 썼습니다.
[박남순 약력 : 1936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가난에 허덕이면서 이 땅의 어머니로 인내와 끈기로 가정을 지켜내며 슬하의 4남매를 당당하게 키워 내었다. 구순을 눈 앞에 둔 지금도 직접 농사를 지으며 취미삼아 시를 쓰고 있다. 2019년도 9월에 KBS ‘노래가 좋아’에 가족들과 함께 출연하기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