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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영현] 무신난(戊申亂)을 평정한 의병장 만운공(晩雲公) 마지원(馬志遠) 포고문(布告文)
 
함양신문 기사입력  2022/10/04 [11:31]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함중 26회 마영현    ©함양신문

 

 

 무신역변유도내문(戊申逆變諭道內文)

(무신1728년 역적의 변란에 도민을 깨우치게 하는 글)  

 

缺 天地之常經君臣之大義神人之同憤叛逆之凶慘凡在含生之類豈不思致討乎今我 聖上以堯舜傳授之法承明旨於慈闈體仁化於靈考八域謳歌孰不願戴顧玆小醜作此前代所無之逆其忘君負國之罪可勝誅哉昔南越尉佗之黃屋左纛後秦苻堅之投鞭濟河勢力强㬥比諸此賊不啻百倍而尉佗之頭終懸北闕之下苻堅之師卒潰淝水之上此豈非天定勝人者乎嗚呼廟堂文武與監兵守宰徒知食肉之爲貴不知經國之猷謀坐視讎賊終無施計此豈非吾輩之羞恥乎惟我三南素稱人才之府庫士林之淵藪當此賊臣亂倫之日豈無一介忠義之士乎今此志遠方倡義旅討賊而素乏才智人微權輕大事不可以獨辦故敢以此意通告於各郡父老豪傑伏願僉君子體 列聖培養之恩憤義士慷慨之志各率所親奴僕今月晦日齊會于全州府聲勢數罪則不怒之威嚴於鈇鉞賊雖强㬥安敢抗拒於堂堂義陣乎無失天討誅凶是期千萬幸甚

 

빠짐 하늘과 땅 간의 지켜야할 떳떳한 올바른 도리는 임금과 신하가 마땅히 행하여야할 큰 의리이고 신과 사람도 매한가지이다. 분하도다! 반역의 역적은 흉악하고 참혹하도다. 무릇 살아있는 무리들을 어찌 다 쳐서 토벌하지 않겠는가? 지금 나는 성스러운 임금님께서 요,순임금의 법을 전수하였고, 임금님의 뜻을 받들어 자상한 어머니의 어진 몸에서 숙종임금이 감화되어 조선 8도가 기뻐 노래 부르니 누군들 이때를 살펴 되돌아보려하지 않겠는가? 미천한 무리들이 이 지경을 만들어 이전시대에 없었던 역적들이 그 임금을 잊어버리고 나라를 저버린 죄 어찌 모두 다 죽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옛날 남월왕 위타는 황옥과 좌독으로 지위가 대단했고, 후진의 부견은 채찍을 던져 강물을 막아 강을 건너서 세력이 강하고 사나워 이 모든 것에 비해 역적이 백배나 더 많을 뿐이 아닌데도 위타의 머리는 마침내 왕궁의 북쪽 문 아래에 달렸고, 부견의 군사들은 비수위에서 궤멸되어 죽었다.” 이 어찌 하늘이 정하여졌는데 사람을 이기지 못하겠는가? 아아! 조정의 문무대신과 더불어 감영과 병영의 지방관 무리들은 기름진 고기를 먹는 것만 귀한 줄 알고, 나라를 다스리는데 좋은 계책을 알지 못하여 역적원수들을 앉아서 보기만 하고 끝내 계책에 대한 실천행동에 따르지 않았다. 이 어찌 우리들은 창피하고 부끄럽지 않겠는가? 아! 우리 삼남인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는 인재의 창고로 잘 알려졌는데 사림의 현사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이 반역의 신하들이 인륜을 어지럽게 하는 날을 당하여 어찌 보잘 것 없는 나라의 충성과 절개의 의리가 있는 올곧은 선비가 없겠는가! 바로 지금 여기에 나 자신 마지원은 의병을 일으켜 역적을 토벌해야겠다. 본래 재주와 지혜가 있어도 지위가 낮고 권력이 작아 큰일은 할 수 없으나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처리하였기 때문에 감히 이것으로써 각 군 원로와 호걸들에게 널리 통지하여 알리는 뜻이다. 삼가 바라옵건대 여러 올바르고 점잖은 사람들과 몸소 역대 여러 임금께서 잘 보살펴준 은혜로 의리와 절의를 지키는 사람들로 솟구치는 정의감과 적개심이 있는 뜻으로 분노하여 각기 남자 종들을 친히 인솔하고 이달 그믐에 모두 모이는 것은 전주부의 명성과 위세로 여러 가지 범죄에 꾸짖지 않아도 위엄이 작두와 도끼보다도 더 두렵기 때문이다. 역적은 비록 무자비하게 잔인하고 사나우나 어찌 감히 당당한 의병의 병진에 저항하리오! 하늘은 역적을 토벌하고 흉악한 자를 죽이는 것을 결코 잊어버림이 없다. 이 기간이야말로 천만 대행이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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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함양은 조선시대 무신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무신난의 역적 충청도의 이인좌(李麟佐) 경상도의 정희량(鄭希亮), 전라도의 박필현(朴弼顯) 등으로 나라가 온통 어지럽고 심지어 청주의 감영을 지키던 병마절도사, 장군, 우후 등을 죽이고 이인좌의 역도들에 함락되었다. 그 당시 경상도에서도 정희량의 무리들이 거창, 함양을 함락시키고 추풍령을 내달려 이인좌 박필현 무리들과 합세하여 서울로 진격하려 했었던 영조 4년 1728년 무신년의 변란이다.

 

이로 인하여 안음현(안의)은 함양, 거창, 합천으로 분리시켜 현(縣)을 없애버리고 함양은 역적의 고을로 전락되어 가혹한 형벌이 내려져 가히 함양의 고통과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나의 7대 조부 만운공(晩雲公) 마지원(馬志遠) 할아버지께서 무신봉사(戊申封事)의 상소(上疏)를 영조임금에게 직접 올리는 글에 의하면 “역수들은 법에 따라 처형을 하되 나머지 시골사람들은 무지한 사람들이라 법이 엄중함을 모르기 때문에 용서하고 어진정치는 살리기를 좋아하는 것이 은혜라고 이므로 가혹한 지방의 형벌을 거두어 달라”는 상소를 임금에게 아무도 보지 못하고 오직 임금만 볼 수 있는 봉사(封事)의 상소문을 올렸다. 그러므로 함양은 7년만에야 비로소 사면되고 복권되기에 이르러 함양이 다시 예전모습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만운공 마지원은 의병장(義兵將)이 되어 포고문을 작성해서 호서(전라도, 충청남도)의 각 고을에 수령에게 보내 방을 붙여 역도들에 저항하라는 격려를 하고서 전주감영에 말을 타고 들어가 전주감영 이현록(李顯祿) 관찰사와 함께 병사들을 모으고 훈련을 시키며 병기를 연마하고 장비를 마련해서 역도인 태인현감(泰仁縣監) 박필현의 공격을 막아내고 승리하였다. 연이어 대대적으로 역적을 소탕하기 위하여 청주를 공격하려고 했다. 이러한 일례의 일들을 만운공 마지원의 일기에 기록되어 전하고 호서지역에 포고문을 전한 기록이 남아 있어 처음으로 발표를 한다.

 

일기에 의하면 1728년 무신년 3월 12일 서울에서 말한 필에 동자를 데리고 전주로 가서 생원 만곡(晩谷) 이우제(李宇濟) 집에 머물며 다음날 정읍 논산을 지나 유숙하고 3월 16일 공주로 가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피란을 가며 이상한 소문이 돌고 흉측한 뜬소문이 나 청주가 함락되었고 곧 공주도 함락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어 18일 관아에서 찾아와 청주에서 보내온 공문서 보여주므로 15일 청주가 함락되었던 것을 실로 알게 되었다.

 

그러자 울분을 토하며 곧장 전주감영으로 들어가 “지금까지 역적이 몸소 관아에 나타나자 사람들이 모두 다 간담이 서늘하여 통곡하고, 삼남의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수 천리의 땅에서 일찍이 남자 한사람도 없었던가? 청주의 진영장을 지키는 병사와 같은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아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순국자라고 말할만하다. 죽음이 어찌 부끄러울 수 있겠는가?” 하고 의병을 일으킬 것을 격려하며 공문의 포고문을 써서 생원 만곡 이우제에게 각 고을에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이 반역의 변란이 일어나는 날을 당하여 삼남인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에서 여론을 들끓어 요란하게 한 모든 군은 호응하므로 국가는 위태롭고 어지럽다. 또한 피를 흘려 죽음을 염려하나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는 것은 부끄럽지가 않다. 살아서는 공신의 자손을 위해 기리는 누각에 이름을 써서 넣는 영광이 있을 것인데, 어찌 대장부의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격려했다.

 

그런 사이 서울의 집에서 사내종 수복이 찾아와 편지를 보내왔는데 내용이 나라에 변란이 생겼으니 빨리 집으로 오라는 서찰이었다. 그러자 만운공 마지원은 단호하게 “내 일찍이 스승에게 학문을 배우러 나아갈 때 아버지에게 효도하고 임금에게 충성하라는 글자로써 나는 47년간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충효의 도를 나타내 본적이 없다. 마땅히 이 변란이 일어난 날에 나라가 위태로워 아침에 저녁 일을 생각할 수 없어 나는 마땅히 나라가 어지러운데 힘써야 하고, 너희들은 마땅히 학문을 잘 닦아 조상들이 남긴 유업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며 종을 돌려보내며 죽음을 각오하고 역적들에 항거하여 태인현감 박필현의 공격을 막아내고 4월 10일에 대대적으로 청주를 공격하려고 이현록 감사와 함께 병사를 훈련시키고 병기를 갈고 닦는 중에 한 장의 공문서를 받아보니 만운공 마지원의 포고문을 보고 모든 역도들이 도망가고 흩어져 모두 격파되었다고 전하므로 이로써 모든 무신난이 평정되었다. 이리하여 나의 7대 조부 만운공(晩雲公) 마지원(馬志遠)께서 직접 작성하여 각 고을에 통지문을 알리고 방을 붙인 포고문을 함양신문에서 처음으로 선을 보인다.

 

함중 26회 마영현

의병장(義兵將) 마지원(馬志遠)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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