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채중 교육학석사⋅화산서원 이사 © 함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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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남계수는 화림동 계곡의 많은 정자와 농월정을 만나서 정자 문화를 꽃피운다. 농월정 달을 보며 노래한 지족당 선생의 해학과 풍류는 한가로움에서 여유가 묻어난다.
광풍루를 지나 남계서원에 다다르면 조선조 5현을 비롯한 사림의 선비들을 서원에서 만난다. 불충이군 두 임금을 섬기지 못함을 역사에 바르게 알리기 위해 사초에 기록한 ‘조이 제문’이 화근이 되어 귀양과 사약, 부관참시를 당했지만 기리는 마음은 충·효의 근본이 되어 서원이 건립되었다.
제향과 교육이 주된 서원은 남계수 굽이굽이 남계, 청계, 화산서원에 이르러 꽃을 피운다. 두 번째 사액서원인 남계서원은 일두 정여창 선생의 혼과 정신이 배향되어 지역선비 교육과 사림의 구심점으로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서원문화의 향기를 풍긴다.
조선조 500년 역사 5현 중의 한분인 일두 선생은 충·효의 실천가이며 성리학의 대가이다. 조선 성리학은 점필재 김종직의 뒤를 이어 한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 정암 조광조, 남명 조식으로 이어진다.
남계수 굽이굽이 남계서원, 청계서원, 화산서원은 남계천변의 작은 평야(구라들, 공배들, 척지들, 사근들)를 거쳐 산청 협곡을 지나 남강에 합류 진양호와 진주성지를 에워싸고 흐른다.
임진왜란 진주대첩! 왜구의 침입에 맞서 싸운 선현들이 조상임이 자랑스럽다. 의병장 춘계 선생의 조부 晦軒 대동은 점필재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 벼슬로 임실현감(군수)을 마치고 함양의 선비들과 교유했다. 선생과 지리산행에 동행하고 주옥같은 시와 글이 전해져 온다.
유뇌계에게 보내는 편지글, 표연수, 도영창 선생과 대고대에 오르는 시, 점필재 선생의 공을 기다리는 마음을 적은 글에서 공의 인품이 묻어난다.
뇌계에서 보내는 편지글(시)에서
제단을 쌓아 북쪽하늘(임금 계신 곳)을 바라보면 창오산 적막한 산속에서 두견새 울음소리는 잠 못 드는 내 마음 같구나! -대고대에 올라- 큰 바위가 돌 받침이 되어 친구들을 맞이한다. 흐르는 물은 멎고 돌더미 되어 돋아난 푸른 이끼는 방석이 되었구나!
점필제 선생이 공(회헌공 임대동)을 기다리는 마음은 가뭄에 단비 같았다. 어젯밤도 오늘밤도 심한 가뭄 걱정에 잠 못 드는 밤 교교한 기다림 속에 단비가 내린다.(친구가 찾아온다) 공의 웃음소리 슬픔이 위로되어 흡족한 마음 소리 내어 웃는다.
대동은 시인이며 정치가요 행정가이며 드러내지 않는 함양의 선비이다. 한훤당과 강서사 연향을 추진했지만 고종의 서원 철폐령으로 중지되었다가 화산서원이 건립되어 주빈으로 모셔져 있다. 종질인 會岩공과 종현손인 남계공 희무 선생이 연향되어 향기를 보태고 있다.
남계공 희무 선생은 명종때 대과급제 벼슬이 좌우승지(왕명 출납, 현 대통령 비서실 비서관) 5음 수재(군수) 고향에 와서 강론과 후학에 힘썼다. (선공후사)나라일에 봉사함에 사사로운 이익은 챙기지 않는 청백리로 벼슬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망북대를 설치하고 초일과 보름에 나라와 임금을 위해 기도하고 강론했다.
구국의 성지 연화산 밑의 자손들! 선현들의 향기가 배여 있는 서원들! 남계서원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기쁨에 더 해 글로벌시대 아카데미 서원으로 거듭 나기위한 교육· 문화 사업에 노력하는 모습에서 향기가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