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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서원 창건 정신을 계승하자” (1)

유네스코 세계유산 넘어 함양 미래를 여는 교육의 산실로
한국 서원 문화의 원형 남계서원, 이제는 함양 발전의 정신적 플랫폼으로 재조명해야

함양신문 | 기사입력 2026/06/29 [09:42]

“남계서원 창건 정신을 계승하자” (1)

유네스코 세계유산 넘어 함양 미래를 여는 교육의 산실로
한국 서원 문화의 원형 남계서원, 이제는 함양 발전의 정신적 플랫폼으로 재조명해야

함양신문 | 입력 : 2026/06/29 [09:42]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남계서원은 단순한 문화재가 아니다. 한국 서원 문화의 원형을 제시한 역사적 공간이자, 함양 선비정신의 뿌리가 살아 숨 쉬는 정신문화의 산실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남계서원이 세계유산이라는 상징성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창건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여 함양 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현재 추진 중인 남계서원 교육관 건립을 계기로, 건물 중심의 접근을 넘어 교육철학과 운영체계 구축에 행정과 지역사회가 함께 나서야 한다는 제언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 서원의 표준을 만든 남계서원

1552년(명종 7년) 창건된 남계서원은 풍기 소수서원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서원이다.

정부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요청 할 때 제출한 것으로 남계서원을 한국 서원 건축의 전형을 확립한 서원으로 평가했다.

경사진 지형을 활용해 제향 공간과 강학 공간, 교류와 유식(遊息) 공간을 체계적으로 배치한 남계서원의 공간 구성은 이후 전국 각지에 건립된 서원의 모범이 됐다.

또한 국가가 아닌 지역 사림들이 주도하여 건립하고 운영한 최초의 대표적 사례로서 이후 조선시대 서원 운영의 전범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역사적 가치가 높다.

건축사적 의미도 남다르다.

함양 사림들은 중국 유학의 건축 개념인 ‘정침(正寢) 이론’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성리학적으로 재해석해 사우와 강당 건립에 적용했다.

전문가들은 “사우의 평면 구성과 좌우 계단 배치 등은 단순한 건축기법이 아니라 유교적 질서와 교육철학을 공간 속에 구현한 결과”라고 평가한다.

이에 따라 서원 입구와 주요 건축물에 이러한 역사와 건축적 특징을 설명하는 안내판 설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불탄 서원을 다시 일으킨 함양 선비들

남계서원의 진정한 가치는 건축물보다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남계서원은 경상남도 의병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이에 일본군은 1595년 남계서원을 불태웠다. 그러나 함양의 선비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직후인 1603년 지역 사림들은 힘을 모아 행정과 함께서원을 재건했다.

이후 남계서원은 경남 사림사회의 구심점으로 자리 잡았으며, 19세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당시에도 훼철되지 않은 경남 유일의 서원으로 남게 됐다.

이는 남계서원이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정신적 중심이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로 평가된다.

 

정여창의 삶에서 찾는 창건 정신

남계서원이 건립된 가장 큰 이유는 일두 정여창 선생의 학문과 인격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해서였다.

정여창은 무오사화로 함경도 종성에 유배된 상황에서도 남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과연 49년의 잘못을 알겠다”고 자책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학문이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인격 수양과 실천에 있음을 보여준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 남명 조식은 “학문을 제대로 한 사람은 생사의 위기에도 얼굴빛이 변하지 않고, 참담한 슬픔 속에서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여창의 삶은 바로 이러한 선비정신의 전형을 보여준다.

 

“우리 고을의 수치”에서 시작된 남계서원 창건

남계서원의 창건 과정 역시 주목할 만하다.

창건을 주도한 개암 강익은 1552년 반계 박승원, 사암 노관, 매촌 정복현, 남계 임희무 등과 함께 논의하면서 “문헌공 정여창의 고향에 아직 서원을 세우지 못한 것은 우리 고을의 수치”라고 말했다.

이 말은 지역의 정신적 자산을 지역민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책임의식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후 지역 유생들은 물론 인근 마을 주민들까지 쌀과 곡식을 내놓으며 공사에 참여했다.

공사는 순탄하지 않았다.

흉년과 재정난으로 중단되기를 반복했지만 지역사회는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10년에 걸친 노력 끝에 사우와 강당, 동재와 서재를 마련하였으며, 연못을 만들고, 거기에 홍백의 연꽃을 심어 서원으로서 면모를 갖추었다.

남계서원은 공동체의 자발적 참여와 협력으로 탄생한 지역교육운동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남계서원의 교육목표는 ‘명성(明誠)’, 남계서원의 강당 이름은 ‘명성당(明誠堂)’이다.

이는 『중용』의 “자명성 위지교(自明誠 謂之敎)”에서 비롯된 것으로 ‘자신의선을 밝히고 그것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을 기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개암 강익은 이를 남계서원의 교육목표로 삼았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성을 깨닫고 이를 실천하는 ‘성신(誠身)’의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었다.

교육 방법 역시 분명했다.

‘거경(居敬)’과 ‘집의(集義)’를 통해 자신을 수양하고 의로움을 실천하는 삶을 지향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교육철학이 오히려 인공지능(AI) 시대에 더욱 필요한 가치라고 말한다.

지식은 기계가 대신할 수 있지만 인격과 책임, 공동체 의식은 인간만이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관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현재 함양군은 남계서원 교육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는 교육관 건립 자체보다 그 안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더욱 중요하다.

교육관은 공간일 뿐이다.

누가(교육 요원), 무엇을(교육내용), 누구를(교육대상), 왜(교육목적), 어떻게(교육방법) 교육하느냐?가 준비되지 않으면 교육관은 단순한 건물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가칭 ‘남계서원 교육준비위원회’ 구성 필요하다.

위원회는 남계서원의 건학이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교육프로그램 개발, 전문교육요원선발, 연수과정 운영 등에 대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특히 공무원과 사회단체 지도층, 지역 오피니언 리더를 대상으로 한 연수 프로그램을 우선 실시해 군민 통합과 지역발전의 공감대 형성으로

함양 발전의 지혜를 창출하는 정신적 산실로 출발해야 한다.

남계서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단순한 존현의 제향,관광자원이 아니다.

정여창과 강익, 정온 선생의 학덕과 실천정신을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함양의 미래 발전 전략을 논의하는 ‘지역혁신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재경·재부·재창원 향우회 등 출향인사들이 참여하는 고향 방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다양한 분야 전문가와 군민들이 함께 함양의 미래를 토론하는 장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한 지역 원로는 “남계서원은 과거를 보존하는 공간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며 “함양 발전의 지혜를 공급하는 교육의 전당이 되기 위해서는함양 발전의 사령탑인 군수가 앞장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창건 정신을 이어갈 때 함양의 미래도 열린다.

남계서원은 한국 서원 문화의 기준을 만든 곳이다.

당시 함양 사림들이 보여준 창의성과 공동체 정신, 학문과 실천의 자세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웅군 함양’, ‘선비의 고장’이라는 자부심 역시 여기에서 비롯됐다.

이제 남계서원은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역할을 넘어 지역의 정신을 통합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교육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건물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이며, 유산보다 중요한 것은 계승이다.

남계서원 창건 정신의 현대적 계승이야말로 함양의 새로운 100년을 여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사회의 관심과 행정의 적극적인 지원이 요구되고 있다.

글쓴이 김찬수 함양향교 주역 강사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 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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