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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영정(息影亭)… 식(息):쉴 식, 영(影):그림자 영, 정(亭):정자 정. 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여유롭고 시적인 이름인가! 어찌하여 이렇게 아름다운 이름을 지을 수 있었을까! 이 정자는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는 정자 이름이다.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1525~1597)이 1560년 장인이자 스승이며 강원도 관찰사를 거쳐 담양부사를 지낸 청백리였던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1496~1568)을 위해 건립했다.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의『성산별곡(星山別曲)』등, 가사문학(歌辭文學)의 산실이자 무대이기도 한 식영정은 환벽당(環碧堂) 송강정(松江亭)과 함께 정송강(鄭松江) 유적으로도 불린다. 서하당은 송강의 외척으로 송강보다 11년 연상이었으나, 송강이 이곳 성산에 와 있을 때 환벽당에서 같이 공부하던 동문이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은 석천 임억령, 서하당 김성원,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 송강 정철을‘식영정 사선(四仙)’이라 불렀다. 이들은 성산의 명소 스무 곳을 선정해 각각 스무 수(首)씩 모두 여든 수(首)의 〈식영정이십영(息影亭二十詠)〉을 지었다. 이것이 후에 『성산별곡(星山別曲)』의 밑바탕이 되었다.‘식영정’이라는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석천 임억령은 정자 이름을‘식영정’으로 짓고, 그 의미를 담은 『식영정기(息影亭記):1563』를 남겼다.
“김 군 강숙(剛叔:김성원의 자)은 내 벗이다. 그가 푸른 시냇가 위의, 소나무 아래 산기슭에 조그만 정자를 지었다. 모서리에 기둥을 세워 그 가운데를 비우고, 띠 풀로 이엉을 만들고 대자리로 날개를 삼으니, 바라보면 마치 일산(日傘)이나 그림배 즉 화방(畫舫)처럼 보인다. 내가 휴식할 곳으로 삼기 위함”이라 했다. 선생(임억령 자신)에게 이름을 청하니, 선생이 말했다.
“자네가 장씨(莊氏:장자)의 말을 들은 일이 있는가? 장주(莊周)의 말에 이르기를 「옛날에 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어 태양 아래에서 달리는데, 그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림자가 자기를 따라 오고 있었다. 너무 숨이 가빠서 좀 쉬려고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가니 그림자가 홀연 보이지 않더라.」”고 했다.
무릇 그림자의 성질은 한 결 같이 사람의 형체를 따라다니기에 사람이 구부리면 구부리고, 사람이 쳐다보면 쳐다본다. 또한 가고 오고, 행하고 그치는 것이 오직 형체의 행위를 따라 할 뿐이다. 그러나 그늘진 곳이거나 밤이면 사라지고, 밝은 곳이거나 낮이면 생겨나니 사람이 이 세상에서 처신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옛말에 이르기를 「꿈에 본 환상과 물에 비친 그림자가 인생이다.」라고 했다. 형체를 조물주에게 받았으므로, 조물주가 사람을 희롱하는 것이 어찌 형체가 그림자를 부리는 정도에 그치겠는가. 그림자가 천 번 바뀌는 것은 형체의 처분에 달려 있고, 사람이 천 번 변하는 것 또한 조물주의 처분에 달려 있다. 그러니 사람은 마땅히 조물주의 부림에 따를 뿐이지 관여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아침에 부자이던 사람이 저녁이면 가난뱅이가 될 수 있고, 옛날에 귀하던 사람이 지금은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는 것도 모두 조물주의 도가니 속일이다. 우선 내 한 몸에 비유해 보면, 옛날에는 높은 관과 큰 띠를 착용하고 금마옥당(金馬玉堂:한림원의 별칭)으로 출입했지만, 이제는 죽장(竹杖)을 짚고 짚신을 신은 채 푸른 소나무와 흰 돌 사이를 거닐고 있다. 또한,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표주박의 음식만을 달게 여기며 자연을 벗하고 있다. 이것이 모두 조물주가 그 사이에서 놀리고 있는 것인데, 내가 스스로 그런 사실을 모르고 지낼 뿐이니 어찌 그 사이에서 기뻐하고 성내겠는가?”
강숙이 말하기를 “그림자는 능히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없지만, 선생님의 경우는 굴신(屈伸)을 스스로 한 것이지 세상에서 버려진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에 자신의 빛을 숨기고 자취를 감추는 것은 차라리 용기가 아니겠습니까?”고 했다. 이에 응답해 “흐름을 타면 나아가고 웅덩이를 만나면 그치는 것이지, 가고 멈춤이 사람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임야로 들어온 것도 한갓 그림자를 없애려고만 한 것이 아니네. 내가 시원한 바람을 타고 조물주와 더불어 무리가 되어서 궁벽한 시골의 들판에서 노닐 때‘거꾸로 비친 그림자(도영:倒影)’도 없어질 것이며 사람이 보고도 지적할 수 없을 것이니, 이름을 식영(息影)이라 함이 옳지 않겠는가.”고 했다. 이에 강숙이 말하기를 “이제야 비로소 선생님의 뜻을 알겠습니다.”고 했다. 석천은 식영정에서 가장 높은 경지에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겠다. 필자의 고향 서하의 화림동 계속에도 아름다운 정자들이 즐비하게 있으니 고향생각이 그리워 정자에 대해 되새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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