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거세거서간 1년(BC 57) 속함군(屬含郡) 또는 함성(含城)이라 칭함, 신라 경덕왕 16년(757) 함성을 천령군(天嶺郡)으로 개칭, 헌강왕 2년(876) 심광대사 영각사(서상면 상남리) 창건. 진성여왕 5년(891) 최치원 천령태수 역임(대관림 상림조성).
고려 성종 15년(996) 함양군은 산남도 진주목(주) 12현 중의 하나, 현종 1년(1010) 함양군으로 환원하고 이안현과 함께 합주에 예속, 우왕 6년(1380) 왜장 아지발도가 이끄는 3,000여 명의 왜구가 함양으로 밀려들자, 감무 장군철은 백성을 이끌고 사근산성에서 농성하고, 원수 박수경·배언은 왜구와 싸웠으나, 사졸 500여명이 전사하여 냇물을 피로 물들여 혈계, 함양읍성 소실.
사근산성 전투는 왜구의 진출을 지연시켜 황산대첩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성계와 이지란이 남원 지리산 부근 황산에서 이성계는 아지발도 투구를 맞히고 이지란은 머리를 맞춘다. 날이 어두워져 이성계 기도로 밝은 달을 끌어올려 대첩을 이루었다 하여 인월(引月)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조선 태조7년(1395) 함양향교 창건, 태종 17년(1417) 안음현으로 개칭,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으로 황석산성 함락 안의현감 곽준과 전 함양군수 조종도 외 수천명이 순국, 인조 7년(1629) 군인 양경홍 역모사건으로 함양현으로 강등, 영조 4년(1728) 정희량 난으로 안음현이 함양과 거창으로 나뉨, 영조 5년(1729) 항양부로 승격시켜 부사를 둠, 영조 9년(1733) 안음현 폐지, 영조 12년(1736) 안음현 복구, 안의향교 창건, 영조 43년(1767) 안의현으로 개칭. 정조 12년(1788) 함양군으로 복원.
명종 7년(1552) 정여창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지방민 유학교육을 위하여 남계서원 창건, 명종 21년(1566) 두번째로 남계(藍溪)라는 이름으로 사액서원, 최초는 주자학 도입한 안향을 배향하는 백운동서원이 명종 5년(1550에 소수(紹修)로 사액되었다.
남계서원은 정유재란으로 불타, 선조 36년(1603)에 나촌으로 옮겨지었다가, 광해군 4년(1612) 지금 자리에 지었다. 전학후묘 건물 배치는 서원의 전형이 됨,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서원은 소수(영주)·남계(함양)·옥산(경주)·도산(안동)·필암(장성)·도동(달성)·병산(안동)·무성(정읍)·돈암(논산)이다.
함양은 삼한시대 변한의 변방 지역으로 대기야에 속한 지역이지만 소가야(고성) 양식의 토기가 발굴되고 있다. 함양 가야토기는 모래 완전히 제거한 진흙을 원료로 물레를 써서 다듬는 독특한 방식으로 제작, 토기를 굽는 가마는 평지에 만든 가마보다 오름 가마를 사용하여 1100~1200℃ 이상의 온도로 가열하였다.
두드리면 쇳소리가 날 정도로 단단하며 물에 뜰 정도로 가볍다. 높은 온도로 인해 질그릇이나 도자기의 밑감이 되는 태토(胎土)속의 장석 등이 녹아내려 자연적으로 유약이 발라져 물을 전혀 흡수하지 않는다. 이런 기술은 일본의 토기 제작에 영향을 주었다. 굽다리 접시와 각종 항아리, ∪형 토기, 그릇받침이 주로 출토되고 있다.
공기흐름이 클수록 화력이 좋아 연통을 세우면 더 잘 탄다. 이는 산소 공급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평지 가마보다 오름 가마가 연기가 잘 빠지고 화력이 좋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지형과 자연의 이치를 이용하는 함양인의 지혜를 볼 수 있다!
함양박물관에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들어 보는 문화재체험실이 있다. 기와지붕 모서리 확대하고 명칭을 붙였다. 암키와는 기와 바닥에 깔고, 수기와는 암키와 위에 올라가는 것, 귀면은 귀신 얼굴을 그린 장식, 암막새는 암키와를 얹은 후 끝을 마무리, 수막새는 수기와 얹은 후 끝을 마무리한 것이다. 명칭을 숙지한 후 부품 하나하나 옮겨 완성한다.
공포(栱包)란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려고 기둥머리에 짜 댄 나무쪽, 주심포과 다포쌓기를 하나하나 맞춰본다. 자석으로 제작된 목이 긴 항아리 해체하여 그림 보면서 짜맞추기 완성하면, 성취감을 맛보면서 문화재를 알아가는 프로그램.
고지도 코너는 읍기와 지명과 거리를 나타내고 있다. 知代內洞村 二十里. 古縣申溪村 四十里…. 함양박물관은 백문이불여일견에서 체험까지 아우르는 으뜸 박물관이로다.
함양은 광역 박물관! 고운광장에 들어서면 필봉산 자락에 〈최치원선생역사공원〉. 고운루에 오르자 함양박물관에서 학습한 공포, 주심포, 다포, 암막새, 수막새, 귀면 등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문창후최치원상 옆에 둥근 돌에 이리보면 전서체 저리보면 초서체인 듯 人百己千, 〈다른 사람이 백번 노력하면 나는 천 번을 노력한다〉
12세 최치원을 맨몸으로 당나라로 유학 보내면서, 부친 최견일은 “10년 안에 과거 급제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 아니다”라는 말로 결심을 다지게 하고, 최치원은 人百己千 각오로 공부하여 18세(874)에 빈공과에 급제한다.
人百己千(인백기천)! 시대를 아우르는 교훈이 되어 항양 학생은 품행이 방정하고 성적 우수한 인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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