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에게나 자기의 분수가 있게 마련이다. 지식의 분수, 지위의 분수, 인격의 분수, 실력의 분수, 재산의 분수, 건강의 분수 등 여러 가지의 분수가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 영원한 것도 아니고 잠시 쉬어가는 명예 좀 가졌다고 기고만장하고, 세상 모두를 아래로 보는 한심한 선비들이 천장 없는 하늘로 분수도 모르고 승천하고 있다.
사람이 지혜롭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바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바로 알고 있다는 것은 자기 분수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옛날 희랍 사람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우리 현대인에게 널리 통용되는 인생 금언(金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
자기의 분수를 아는 사람을 지분(知分)이라 하고, 분수에 지나치게 사는 것을 과분(過分)이라고 한다. 자기 분수를 지키는 것을 수분(守分)이라고 하지 않을까 한다. 자기 분수에 만족하는 것을 안분(安分)이라고 하면 어떠할까? 지분과 수분과 안분은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도 하고 싶다.
우리의 말들 중에 ‘~답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이 역시 분수를 알고 분수답게 산다는 말이다. 선배가 선배로서의 품을 줄 알고 배려에 능하면 선배답기 때문이요, 스승답다는 것은 스승으로서 매사에 가르침이 있고 용서하는 마음의 폭이 넓기 때문이다. 어머니나 딸이 ‘어머니답다, 딸답다.’라는 것도 어머니는 어머니로서, 딸은 딸로서 애정과 효심이 말과 행동에서 분수에 맞게 상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분수에는 과거와 현실, 미래를 생각하는 분수도 있으리라 생각이 된다.
과거를 망각하는 현실의 과분을 분수에 어긋난다고도 하고, 과거에 집착이 되어 현실을 모르는 사람을 분수대로 살라는 말도 있으며, 미래 생각 없이 가진 대로 흥청망청하는 사람을 분수가 아닌 속없는 푼수라고 한다.
분수없는 생활을 하면 파멸과 불행의 비극이 오기 마련이다. 개인(個人)이나 단체(團體), 국가(國家) 어느 곳 할 것 없이 적용이 된다. 권력도, 금력도, 세력도 오남용을 하면 푼수데기가 된다. 푼수는 분수보다 더 안 좋은 말이다. 빛이 나야 할 곳에 왜 푼수데기의 옷을 입혀야 되겠는가? 분수에 넘치는 일과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질소검박(質素儉朴)’이라는 말이 있다. 가졌다고 남용하지 말고, 없으면서 과용하지 말라는 내용이 아닐까 한다.
분수를 지키는 것은 인간 삶의 미덕이요, 지혜롭게 사는 수단이다. 방탕, 방종, 탈선, 방만, 타락, 방자, 교만, 오만불손, 사치, 낭비, 허욕은 어떤 경우든 분수없는 일이다.
오늘날 우리 국민은 과거의 지나온 민족사를 너무 모르고 사는 것 같다. 모르고 사는 것은 분수를 망각하고 사는 것이다.
사치와 허영, 낭비, 퇴폐적 풍조 속에서 허망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것도 바람직하다. 만에 하나라도 분수를 버리고 호화로운 생활과 값비싼 외래 수입품과 마시고 먹고 놀고 향락과 허영에 빠지는 것은 병든 생활의 풍조요, 망국적 퇴폐풍조다.
분수가 없는 곳에는 정도와 의(義)가 없다. 의가 없는 곳에는 진실이 없게 마련이다.
우리나라 국민은 배려와 용서하는 마음이 너무 가볍다. 일제 침략자들의 만행 36년 세월 아직 1세기도 지나지 않았다. 그 시대를 경험한 우리 대선배님들이 아직도 똑똑히 지켜보고 계시는데 유념했으면 한다. 내 인생에서 당해 본 것이 아니라고 분수없이 이렇게 빨리 잊을 수가 있을까? 우리 국혼을 지켜온 선열들의 가슴 벅찬 의지를 지켜주는 것이 대한국인의 자존이요, 의무요, 도리요, 분수다.
분수는 자각이다. 우리는 자기의 분수를 지키고, 분수에 맞게 행동하는 슬기와 총명을 가져야 한다. 권력도, 금력도 분수없이 오남용을 하면 그 대가는 몇 수십 배로 받을 수도 있다.
오늘 하루도 1년 중 최선의 날로 정하고, 나의 행동과 생활을 분수에 맞게 하여 멋진 인생 역전의 날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