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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역사연구소 박선호] 단성현감사직소 해설1부
 
함양신문 기사입력  2024/02/19 [10:44]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황석역사연구소 박선호   ©함양신문

 

1597년 정유전쟁에서 군인도 아닌 서부경남7개현 백성 7,000여명이 열배도 넘는 일본군, 전국시대에 난립한 군벌들을 평정하고 통일을 이룬 풍신수길의 장군, 125,000석의 녹봉을 받는 히로시마(廣島城)성주 모리데루모도((毛利輝元)의 75,300명의 대군을 궤멸시켜 7년 임진전쟁을 종료시킨 결정적인 전투가 된 <백성의 전쟁 황석산성 대첩>에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으로 강력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사상적 근저가 되는 남명조식의 1555년 12.2일의 단성현감사직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단성소를 봉건시대 일시적으로, 시대적으로, 일부지역에만 해당되는 가벼운 상소문으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自由民主主義와 넘치는 지방자치시대에 선출직이나 공무원들이 일상생활에서 실천해야 할 사상이다. 공자의 三綱, 즉 性理學의 한계인 왕권중심의 봉건사상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혁명사상으로 지방의 작은 대학에서만 연구해야할 낡은 상소문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유능한 학자나 유수한 기관이나 큰 대학이라면 반드시 연구해야 할 사상으로 오늘날의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기준이 되어야할 사상이다. 1787년의 프랑스의 대혁명보다도 200년이나 앞선 것으로 인간이하로 취급을 받는 노예나 종이 된 백성들의 인권을 개혁하려는 즉, 민주주의의 시발적 진보사상이다. 단성현감사직소가 널리 알려지지도 못하고 정착되지 못한 것은 1581년 황해도 봉산에서 삶의 터전을 약탈당한데 대한 <임꺽정의 봉기>를 반란으로 낙인 백여 명을 참살한 사건이나 1589년 1천 여명의 지식인들을 죽이고 귀양을 보낸 기축옥사, 홍길동의 저자로 1618년 능지처참을 당한 허균 등, 만인평등의 진보사상을 완벽하게 차단함으로써 결국에는 성리학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강력한 배경 때문이었다. 1555년 단성소 그 후 남명은 하늘의 부름을 받은 1572년까지 20여 년간 백성주도방위전략으로 무력이 아니라 백성들이 스스로 깨우치는 소프트파워인 교육에 주력하여 130여명의 지도자를 배출한다. 그들 중 수제자 합천의 정인홍에게 교육을 받고 1577년 거창좌수로 위촉된 황석산성 백성군의 군무장 만석군유명개가 1597.8월 순국할 때까지 <종들과 밥도 같이 먹고 일도 같이 하고 말도 같이 섞는 만인평등사상>을 20여 년간 생활 즉 교육으로 실천한 것이다. 죽음을 함께한 함양군수조종도와 성리학자 정여창의 손자 정언남이나 안음현감 곽준도 남명의 제자 한강 정구에게 사사한 남명학파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선왕(중종)께서 신이 보잘 것 없는 것을 모르시고 처음으로 참봉에 제수하셨고 전하께서 왕위를 이어받으시고 두 차례 주부에 제수하셨고 이번에 또 현감으로 제수하시어 두렵고 불안하여 마치 산을 짊어진 듯합니다. 그럼에도 감히 대궐에 나아가 전하의 은혜에 사은숙배하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군주가 인재를 등용하심은 목수가 목재를 가져다 쓰는 것과 같아 깊은 산과 큰 늪의 재목을 모두 이용해서 큰 집을 완공할 적에 목수가 알맞은 재목을 가져다 쓸 뿐이지 목재가 스스로 참여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인재를 등용하심은 나라를 가진 군주로써 책임이지만 신은 맡은 일을 감당하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이 때문에 감히 그 큰 은혜를 사사로이 받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신이 머뭇거리며 나아가기 어려워하는 뜻은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산세가 암컷 토끼가 하늘의 숫토끼를 기다린다는 전설의 지형 합천군삼가현토동에서 1501년 태어난 남명조식은 남들처럼 공자의 성리학을 연구를 하여 위로는 하늘의 경지에 이르고 아래로는 말로만 하는 성리학이 아니라 생활 즉 교육으로 개인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넘어서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왕의 부름에 따라서 벼슬을 하고 소신을 가지고 국가경영에 참여를 하고 싶었지만 시키는 일만 해야 하는 제도적인 한계 때문에 참봉과 주부로 불렀고 단성현감으로 제수를 하셨지만 그때마다 목수가 집을 지을 때 가져다 쓰는 나무토막이 된 것 같고 낚시에 주둥이가 꿰어지는 물고기가 되는 것 같아서 사양을 하였던 것이다. 오늘 날 수십 년을 공부하고 학사, 석사, 박사 등 자격을 갖추었으면서도 지방이나 나라의 발전을 위한 백성이나 국민중심의 소신을 펼치기보다는 부패한 지도자나 관리자와 야합하여 동료나 상사를 죄인으로 만들고 자신도 죄인이 되어 한탄하는 사람들처럼, 두려워서 왕의 부름에 응하지 못한다고 그 시대에 남명은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이 벼슬에 나아가기 어려워하는 까닭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지금 신은 나이가 예순에 가깝지만 학술은 거칠고 어두우며 문장은 과거에 겨우 합격하기도 부족하여, 행실은 물을 뿌리고 비질하기에도 부족합니다. 과거에 급제하려고 노력한 10여 년 동안 세 차례나 실패하고 물러났으니 애초 과거를 일삼지 않았던 사람은 아닙니다. 설사 과거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발끈하여 과거를 당장 집어치운 평범한 백성에 불과할 뿐 큰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두루 갖춘 인재가 아닙니다. 하물며 사람됨의 선악은 결코 과거응시 여부에 달려 있지 않음에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미천한 신이 헛된 명망을 훔쳐서 담당 관원에게 잘못 알려졌고 담당관원은 신의 헛된 명망을 듣고서 전하를 그르쳤습니다.” “전하께서는 과연 신을 어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문장에 능한 자라고 해서 꼭 도가 있지는 않으며 도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신과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전하께서 신을 모르시는 것이 아니고 재상들도 신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 됨됨이를 알지 못하고 등용했다가 훗날 국가의 치욕이 된다면 그 죄가 어찌 신에게만 있겠습니까? 헛된 명망을 바쳐 몸을 파느니 보다는 실제로 곡식을 바쳐서 관직을 사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신은 제 한 몸을 버릴지언정 차마 전하를 저버리지는 못하겠습니다. 이점이 관직에 나아가기를 어려워하는 첫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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