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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일 백전면 출신] 무정(無情)의 세월(歲月)
 
함양신문 기사입력  2024/02/19 [10:43]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전병일 남양주신문사 회장    ©함양신문

 쉼 없이 흐르는 세월을 따라가다 보니 80의 고비를 넘게 되고, 빡빡머리, 검정색 광목바지에 흰 저고리와 검은색 조끼, 검정고무신, 책보자기 어깨에 메고 추위를 이기려고 손을 비비며 우리민족의 대명절인 설날에도 학교를 가야하는 그 옛날 70여 년 전 일이다.

 

전쟁의 시기라 밤이면 사방에서 총소리가 요란하고, 공산군에 끌려가 총 맞아 죽기도 하고, 이웃 간의 사사로운 감정의 모함으로 빨갱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어디론가 끌려가 총살을 당하여 시신도 넘겨받지 못하고 한평생을 한 많은 무정의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전쟁통에서도 동갑내기들을 중심으로 한 살 위아래가 아니면 3년~6년의 연상까지 같은 학년의 반을 이루고 친구가 된 것이 7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해도 그때 그 친구들을 어찌 잊을까? 언제, 어디서든지 백발이 된 지금도 만나면 가장 반가운 친구들이다.

 

동서로 뻗어 웅장함을 보였던 학교건물, 수천 명의 면민이 모여 화합을 과시하던 학교운동장, 똑같은 건물 같은 운동장이지만 왜 그렇게 작아 보이는 걸까? 무정의 세월 속에서 세상의 변화된 모습일 것이다.

 

설날이면 모두들 흰 두루마기 입고, 이산저산 조상님의 묘소에 성묘를 올리고, 동네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세배를 드렸던 그 시절은 우리민족의 멋이요, 높은 가치인 미풍양속의 자랑스러운 풍습이다.

 

설날이 다가오고 있다. 타향살이 55년이지만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단 1초도 마음속에서 떠나보낸 적이 없다.

 

명절과 장날이면 읍민관에서 영화 관람하고, 짐차와 같은 버스를 타고 상림숲을 관통하던 도중 버스가 훌라춤을 한번 추면 버스의 빈 공간이 마련되던 그 시절,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 날 버스노선도 우회도로로 변경이 되었다. 장날이면 국밥집에서 만나는 처음 보는 사이지만 반말투로 자연스레 시골정보를 주고받던 그때가 사람 사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이었던 같다.

 

내 고향 함양은 1968년 14만 명의 인구가 3만 7천으로 폭락하고, 내가 자란 백전의 실상도 만여 명에 달하던 면민이 1천 5백여 명으로 쓸쓸한 모습을 넘어 앙상한 나뭇가지 같이 되었다. 4개교의 초·중학교가 일찍 폐교가 되고, 달랑 하나 남은 초등학교 역시 2024년도 6명의 졸업생에 3명의 입학생으로 전교생이 19명이라고 한다.

 

사람 사는 곳에는 교육기관 존치가 필수요, 위상이다. 학교를 유지하여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재·내외 면민과 선배들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100년도 아닌 그렇게 멀지않은 2·30년 후를 생각해보자.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땅이 산천초목만 무성하여 바람에 휘날리고 인류라곤 찾아볼 수도 없이 조상님들의 무덤만 있을 것이라는데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정부 정책이 있어야 한다. 서울만 땅 넓히고, 인구 늘리는 정책은 반개혁적이다. 또 있다. 고향을 지키는 재내 향토민들의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고향을 찾는 재외민들에게 차별 없이 따뜻하게 맞이해야 한다. 어느 곳을 막론하고 고향을 찾는 이들의 원성이 많다.

 

우리 한민족 선인들의 미와 멋은 어디에 있었을까? 도포입고 갓 쓰고 선비들의 의젓한 모습이며 새뜻한 초립동이 사모관대(紗帽冠帶) 쓰고, 마당 한가운데 서서 신부를 기다리는 결혼식장에 구경꾼으로 모여든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둘러서서 신부가 곰보라네 하면서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음이 터지던 그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고, 동절기를 지나면 한 두 달사이로 결혼해서 시집온 새색시들이 유일한 모임장소인 우물가로 모여들어 정담의 인사를 나누고 설명절과 보름이면 온 마을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이집 저집 다니면서 묵은 액운을 떨어낸다고 농악의 깃발을 앞세우고 덩실덩실 춤추며 모두가 우리가 되어 풍요로웠던 인심은 다시 올 수 없는 까마득한 옛날의 이야기로만 남아 있다. 땟거리가 없어도 밤이면 사랑방에 모여 앉아 청담고론(淸談高論)에 밤을 새우며, 배움은 적어도 대의(大義)를 위한 신념과 기백 또한 옛날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단종 복위의 음모를 꾀하다 처형을 당한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들의 충절의 정신은 5백년이 지난 오늘에도 우리민족의 대표적인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외씨버선에 열두 폭 치맛자락, 허리곡선 휘날리면서 물동이 머리에 이고 다니던 시절과 청아하게 들려오던 다듬이소리의 리듬도 사라져 버렸다. 논개의 높은 충의와 춘향의 곧은 절개는 우리민족 여인들의 정신을 잘 나타내고 있는 역사의 산 증거이다.

 

쌀을 아끼기 위하여 분식 장려운동을 하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가 하나만 낳자던 산아제한 운동이 한 집 건너 하나만 낳자고 하던 세월이 쌀농사를 짓지 않으면 보상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지자체에 따라 보육비 지원을 한다고 한다. 무정세월의 배를 타고 살다보니 불과 반세기만의 달라진 오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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