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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소재우] 야단법석(野壇法席)의 세상
 
함양신문 기사입력  2020/11/23 [11:23]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송암 소재우 본지논설위원 © 함양신문

옛날 집안에 아이들이 많아서 시끄럽게 떠들고 어지럽게 다니면 어머니가 왜 이리 야단법석(野壇法席)이냐 하면서 꾸중하셨다. 또 축제나 행사 준비를 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떠들고 바쁘게 움직이면 온통 야단법석이네 한다. 이는 어떤 일이 비정상적인 움직임일 때 이 말을 쓰는데 다른 말로 ‘난리법석’이네 하기 도 한다. 그러면 ‘야단법석’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선 이 말은 불교에서 나온 말이며 우리나라에서 발생 된 단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야단법석의 불교사전적 의미는 ‘들판에 설법 단(壇)을 만들고 대중(大衆)을 모아 임시로 설법하는 자리를 말한다. 준비 없이 임시로 마련했기 때문에 주최 측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들 모여 떠들고 다녀 시끄러운 법회를 하는 자리라는 뜻이다. 그 후에 의미가 바뀌어 많은 사람이 한곳에 모여 몹시 소란하게 구는 일을 야단법석이라 말하게 되었다고 사전에 적혀있다. 즉 많은 사람이 설법을 들으려 모이게 되자 법당이 좁아 야외에 임시로 단을 만들고 자리를 마련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게 한 것인데 준비과정에서 소란스럽고 무질서 하였다는 뜻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모여 시끌벅적하면서 활동하는 가운데 자아성찰(自我省察)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야단법석을 들먹이느냐 하면 오늘 날 우리나라가 그야 말로 야단법석이다. 대선 총선 지방선거 보선 등으로 여야가 바뀌니 불법 소송으로 세상과 언론이 야단법석이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또 불명에 퇴진한 자리 보궐 선거 문제와 코로나 문제 물가고의 경제문제, 노인과 아동 복지 문제

 
등 큼직한 것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해 야단법석이다. 정상적인 정치와 경제가 갑자기 비정상이 되어서 시끄러워 지니 이를 바로 세우기 위해 분주하게 떠들고 움직이는 난리법석(亂離法席) 사회라는 것이다. 아무리 정상으로 가기위한 일이라 하지만 애당초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벌어진 일이니 시끄러운 가운데 법석(法席)을 마련해 설법을 듣고 깨우침을 받듯이 현재 우리사회의 야단(野壇) 사태를 잘 마무리해 앞으로의 길잡이로 삼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야단법석’의 참뜻은 비정상적인 상태를 인정하고 수습하면서 새로운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념이나 감정을 배제한 선거문화,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하는 경제문제, 포풀리즘에 치우침이 없는 완충 장치의 복지정책 등에서 요란한만 떨지 말고, 야단을 마련하듯 당리당략이 아닌 바른 해결책을 마련하여 시급하게 문제를 풀어가자는 것이 법석(法席)이다.

 
 현 사회 상태를 볼 때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은 그저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5000년의 역사 가운데서 백성들의 소리를 배제한 나라나 정권은 결국 오래 가지 않았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야단 서러운 군중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기 위한 것이 선거문화이니 우리국민들이 바른 생각으로 투표하고, 정치하려는 어른들의 깨끗한 양심이 어울러 지는 법석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면 결과가 좋을 것이며 밝은 사회가 되리라 본다.

 
그래서 야단법석의 유래를 음미 해보면서 그 뜻을 다시 생각해보자 
야단법석은 부처님이 인도 영축산 중턱에서 500명의 불자들에게 설법함이 처음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야단법석을 처음 하게 된 스님은 원효 대사이다. 스님이 양산군 불광산 산내 암자에 계실 때 중국에서 스님의 명성을 듣고 많은 분들이 와서 제자 되기를 바라고 선서하자 그곳에 절을 세워 ‘내원사’ 라 하자 주위의 여러 마을주민과 여러 절 스님들이 1000여명 모이자 이들을 위해 뒷산에 단을 쌓고 법석을 마련하여 <화엄경>을 강설하였는데 첫 야단법석 이였다. 또 그곳에 천여 개의 돌덩이들이 좌석 같이 까려 있어 그곳에서 화엄경을 설했다 해서 ‘화엄벌’이라 하며, 천여명의 성인이 모였다 해서 천성산(千聖山)이라 하였다. 천여명이 모여 시끌벅적하였으니 야단법석이 후에 소란스러움의 대명사로 바뀌게 되었다. 그 후 원효 스님은 신라 전역을 다니면서 절이 없는 마을에서 야단법석을 마련해 설법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바로 잡는 법회를 열었다. 13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문경 백화산에서 원효성사의 얼을 이은 ‘야단법석’을 펼치고 있다. 원효 스님은 갔어도 그의 야단법석은 지금도 전국 사찰에서 수시로 마련하고 있어 나라가 어려울 때 우리민족의 얼을 바로 잡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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