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속의 생물체인 인간은 천성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언제나 어떤 믿음과 종교에 귀의하고 누구나 하나의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한 때 불교는 국교이었고 지금도 대다수의 민중이 뿌리 깊게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의식 속에 부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여길 만큼 민중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종교가 불교(佛敎)이다.
인간세계에서 전생과 어떤 모든 인연이 있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소위 불교에서 말하는 대표적인 인연이 있는데 이를 일러 십이연기(十二緣起)라 한다. 이를 십이인연(十二因緣) 또는 십이유지(十二有支)라고도 말한다. 12개의 각 항은 윤회(輪廻)의 생존(生存)을 구성하는 부분이라는 의미에서 유지(有支)라고도 한다. 즉, 십이연기는 곧 ① 무명(無明), ② 행(行), ③ 식(識), ④ 명색(名色), ⑤ 육처(六處), ⑥ 촉(觸), ⑦ 수(受), ⑧ 애(愛), ⑨ 취(取), ⑩ 유(有), ⑪ 생(生), ⑫ 노사(老死)를 말한다.
연기(緣起)는 우주만유가 인연생기(因緣生起) 즉, 인(因)과 연(緣)에 의지하여 생겨난다고 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연기법(緣起法)을 원인과 결과의 법칙 또는 줄여서 인과법칙(因果法則) 혹은 인과법(因果法) 또는 인연법(因緣法)이라고도 부른다. 이 12가지 연기를 알면 인생의 고(苦) 즉, 모든 인간이 겪는 고통(苦痛)을 벗어나는 방법을 알 수 있지 않을 까 싶어진다.
첫째, 무명(無明)으로서, 미혹(迷惑)의 근본이 되는 무지(無知)로서, 사제(四諦) 즉, 고집멸도(苦集滅道)와 인연의 이치를 모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사제의 진리인 불교의 근본의(根本義)에 통달하지 않은 마음의 상태로서, 곧 모든 번뇌의 근원이 되고, 사견(邪見)·망집(妄執)으로 법의 진리에 어두운 일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 행(行)이다. 이는 신행(身行)·어행(語行)·의행(意行) 등의 삼행(三行)을 뜻하며, 그것은 삼업(三業)과 같은 것이다. 즉 무지무명을 인연으로 하여 그릇된 몸과 말과 마음의 삼업을 발생하는 것이 행(行)이다. 이 행은 그릇된 행위뿐 아니라 그 행위의 여력으로서의 습관력도 포함된다. 행위와 경험은 어떠한 것이라도 그대로 소멸되지 않는다. 반드시 그 여력을 남기며,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지능이나 성격 등의 소질로써 보존, 축적되고 전수되기 때문이다.
셋째, 식(識)이다. 제육식(第六識)인 의식(意識)으로서, 그것은 인식작용 또는 인식주관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인식의 주관으로서의 제육식(第六識)을 말함이다. 이 식(識)은 입태(入胎)의 식(識)과 재태(在胎)의 식, 출태(出胎) 후의 식으로 구별되는데, 보통은 과거세의 업에 의해서 받는 현세 수태(受胎)의 일념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넷째, 명색(名色)이다. 태중(胎中)에 있어서의 몸과 마음을 뜻하며, 식(識)의 대상이 되는 육경(六境:色 · 聲 · 香 · 味 · 觸 ·法)을 가리킨다.
다섯째, 육처(六處)이다. 육입(六入)이라고도 하며, 태내(胎內)에서 자리 잡아가는 인간으로써 갖추어야 할 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의 오근(五根)과 의근(意根)을 가리킨다. 감각과 지각의 능력이라는 뜻이다.
여섯째, 촉(觸)이다. 육근(六根) · 육경(六境) · 육식(六識)의 화합을 뜻한다. 이들의 화합으로부터 감각과 지각에 의한 인식조건이 성립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일곱째, 수(受)이다. 고락(苦樂)과 불고불락(不苦不樂), 좋고 나쁨을 감수(感受)하는 감각이다. 이것은 인식(觸) 후에 생기는 고락(苦樂)등의 감수이다. 동일물(同一物)을 인식하여도 탐욕을 일삼는 자는 즐거움으로 느끼고, 성난 사람은 괴로움으로 느끼는 차이가 있다. 그 까닭은 인식 주체로서의 식(識)이 백지와 같은 것이 아니라 과거의 무명(無明)과 행(行)에 의하여 탐욕과 진에(瞋恚) 등의 성격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여덟째, 애(愛)이다. 인간으로써 괴로움을 피하고 항상 이로움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근본 욕망이다. 갈애(渴愛)라고도 말한다. 목마른 자가 물을 찾는 것과 같은 심한 욕구를 가리킨다. 인식에 의해 고락 등의 감수가 생기면 괴로움을 주는 사람이나 물체에 대해서는 미워하고 피하려는 강한 욕구를 낳게 된다. 그리고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나 물체에 대해서는 이를 구애(求愛)하려는 강한 열망(熱望)을 낳는다. 이와 같이 강한 욕구와 열망이 애(愛)인 것이다.
아홉째, 취(取)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에 집착하는 작용을 말한다. 앞의 애(愛)는 마음속에 생기는 심한 애증(愛憎)의 생각인 데 반하여 이 취(取)는 생각 뒤에 생기는 취사(取捨)에 대한 실제행동을 말한다. 사랑하는 자는 이를 빼앗고 미워하는 자는 이를 버리거나 혹은 살상(殺傷)하는 것과 같은 실제 행동을 가리킨다. 즉, 몸과 말에 의한 취사선택의 행위가 취(取)이다. 살생 · 도둑질 · 사음 · 거짓말 · 욕설 등이 이에 속한다.
열째, 유(有)이다. 애·취(愛·取)에 의해서 가지가지의 업을 만들고 미래의 결과를 만드는 작용이 유이다. 유(有)는 넓은 뜻에서 현상적 존재를 가리키므로 행과 유위(有爲)와 마찬가지로 일체의 존재를 뜻하며, 여기에서 말하는 유(有)는 취에 의한 취사선택의 실제행위가 그 여력을 남긴 것이다. 그러니까 과거 행위의 습관력 축척인 동시에 그것은 미래의 행위를 규정하는 것이다.
열한째는 생(生)이다. 태어남을 뜻한다. 유정(有情)이 어떤 유정의 부류에 태어나는 것이기도 하고, 또 일상생활에서 어떤 경험이 생기는 것이기도 하다. 앞의 경우에는 그 유정의 과거 모든 경험의 여력으로서의 지능 · 성격 · 체질 등을 지니고 태어나게 된다.
열둘째, 노사(老死)이다. 인간이 태어난 뒤에 자라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 등의 괴로움이 생기는 일말의 과정인 것이다. 생물체인 인간이 이 일체의 고뇌(苦惱)를 겪으며 늙어 병들어 죽게 되는 것에 의하여 대표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명(無明)이 다함에 따라 노사(老死)가 없어지는 과정이 연기라고 한 것이다. 곧 무명이 다하면 행(行)이 없어지고, 차례대로 식(識)과 명색, 육처,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있어 저 것이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번뇌(煩惱)는 무명을 없애면 마침내 열반(涅槃)에 되돌아 올 수 있는 것이다. 일체개고(一切皆苦)라고 했다. 세상만물은 모두 이 십이연기에서 생기는 것이며, 우리 이 연기법을 확연히 깨쳐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면 어떨 까 싶어진다.